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송시열이 한성에서 벼슬 생활을 할 때
머물던 곳이다.
송시열은 충청도 태생으로,
일생을 주로 충청도에서 보냈기 때문에
한성에서 머문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.
조선시대 사람들은 송시열의 집이 있던 일대를
송시열의 성을 따서 '송동(宋洞)'으로도 불렀으며,
봄에는 꽃이 많이 펴 꽃 구경하는
명소로도 여겼다고 한다.
현재 그가 살았던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,
그가 '증주벽립(曾朱壁立)'이란 글씨를
새긴 바위와 송시열 집터임을 알리는
비석 '우암구기(尤菴舊基)'가 남아있다.
'증주벽립(曾朱壁立)'은 '
증자와 주자의 사상을 계승하여
우뚝 세우겠다'는 의미로,
글자 크기는 세로 약 60cm이다.펌)
우암송시열집터
서울 종로구 명륜1가
https://naver.me/GUDXwH77
우암송시열집터 : 네이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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